'국민 영웅' 박태환-김연아도 지키지 못하다니..

July 23, 2014

OhmyNews

Written by Jung Hye-Jung


[오마이뉴스 정혜정 기자]


짜여진 훈련을 충실히 소화했다. 심장 맥박수는 230까지 치솟았고, 고된 훈련으로 피를 토하는 것은 예사였다. 올림픽을 앞둔 마무리 연습에서 세계신기록보다 좋은 기록을 네 차례나 얻었다. 특히 시합 전날 연습에서는 세계신기록보다 2~3초 앞선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금메달은 당연하다 생각했고 올림픽이 끝나도 뜨거운 관심과 탄탄한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 기대했다.


2년 전,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한 박태환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었다. 자유형 400m의 전설을 꿈꿨던 박태환은 세계신기록을 목표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세계기록 경신이라는 목표 아래 장이 꼬일 듯한 고통 쯤은 거뜬히 참아냈다. 2012년 7월 28일, 자유형 400m 예선에 출전한 박태환은 3:46.68을 기록하며 조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지만 부정 출발로 실격됐다.


경기 직후 마이클 볼 코치의 강력한 항의에 국제수영연맹(FINA)이 실격 처리를 번복하고 박태환을 결승전 명단에 올렸으나 이미 선수의 컨디션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국제수영연맹의 공식입장이 나온 것은 결승을 고작 5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실격 판정 번복 이후 '은메달', 꼬여버린 2년


실격 판정으로 '멘붕'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때는 평소같으면 피로를 풀고, 결승에 대비해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낮잠은 커녕 마인드컨트롤조차 힘겨웠던 박태환은 결국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고, 목표했던 세계신기록은 달성하지 못한 채 올림픽을 마쳐야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400m, 200m 은메달이라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냈지만 선수 자신에게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이었다.


당시 몸과 마음 모두 지쳐버린 박태환은 자신의 경기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지만 "메달리스트들은 폐막식이 끝날 때까지 남아달라"는 대한체육회의 요청에 귀국 날짜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고, 도망을 쳐서라도 돌아가고 싶다'던 박태환은 결국 예상보다 나흘 뒤에야 인천공항에 내릴 수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에도 박태환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다. 박태환 입국 일주일 후, 동호인들이 참가하는 전국 마스터즈 수영대회가 열렸다. 주최측인 대한수영연맹은 이벤트 형식으로 열리는 국가대표 시범경기에 박태환이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박태환 측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뒤이어 연맹의 포상금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런던올림픽에서 2개의 은메달을 획득한 박태환은 수영연맹으로부터 5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받게 되어 있었지만 연맹은 이 포상금을 박 선수에게 지급하는 대신 다이빙 유망주를 지원하는 데 썼다. 문제는 선수 측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지 않은 데 있었다. 2013년 6월 SBS 예능프로그램 < 힐링캠프 > 에 출연한 박태환은 이와 관련해 연맹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저는 기사를 통해서 알았어요. 저에게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포상금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베이징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때도 받고나서 바로 기부를 했어요. 베이징올림픽 때도 받고나서 대표팀 코치진이나 개인 전담팀, 꿈나무들에게 다 기부를 했어요. 솔직히 저 개인적인 섭섭함은 없었어요. 단지 기사를 통해 알게 되니까 서운함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이빙 꿈나무 선수들 훈련하고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하니까 좋게 생각했죠."


런던 현지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선수의 멘탈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치료받지 못했다. 연맹과 협회는 선수를 보호하지 못했다. 올림픽 이후 제대로 된 훈련 장소를 구하지 못한 박태환은 체육고등학교와 일반 회사원들이 사용하는 수영장에서 짬짬이 훈련해야 했다. 국가대표 훈련량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박태환은 연습량 부족으로 2013 바르셀로나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불참을 결정했다. 박태환을 지도하던 볼 코치는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훈련할 장소를 찾지 못해 세계대회에 나서지 못한다는 황당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도 연맹의 도움이나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 뒤, 후원사와의 계약이 만료됐다. 박태환은 "운동선수에게 후원사는 자존심과 같다"며 "후원사가 있을 땐 몰랐지만 없으니까 내 가치가 떨어진 듯한 기분"이라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자비로 전지훈련 비용을 충당해오던 박태환에게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2013년 6월, 박태환의 팬들이 '국민스폰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7000여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고 이를 선수에게 전달했다. 한달 뒤인 7월 18일, '삽자루 선생님'으로 알려진 수학 강사 우형철 SJR기획 대표가 1년 간 5억 원 지원을 약속하며 박태환과 후원 계약을 맺었다. 이들의 도움과 인천 상공회의소의 후원으로 박태환은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날 수 있었다.


아시안게임 선발전 대회 MVP로 우뚝


박태환이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연맹이 또 한 번 문제를 일으켰다. 수영연맹이 촌외훈련 규정을 잘못 적용해 박태환을 국가대표 강화훈련 참가자 명단에서 누락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박태환은 한 달치 훈련수당을 받지 못했다. 보호하고 협력해야 할 선수와 연맹 사이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훈련하던 박태환이 7월 초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위해 귀국했다. 지난 21일 막을 내린 '2014 MBC배 전국수영대회'에서 박태환은 자신의 주종목인 자유형 100m·200m·400m를 포함해 개인혼영 200m·400m, 단체전 계영 800m에 출전해 모두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6관왕에 오르며 대회 MVP를 차지한 박태환이 오는 9월 개막하는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이를 악무는 상황을 맞았다. 지난 18일 우형철 대표와의 후원 계약이 만료된 것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을 결심한 박태환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부활은 절실하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새로운 후원사가 나타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선수 최초로 남자 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이지만 지금은 연맹의 보호도 대기업의 지원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홀로 긴 터널을 걷고 있는 박태환은 인천아시안게임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오는 30일 호주로 출국할 예정이다.


▲김연아 전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 (자료사진), ⓒ 이희훈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런던에서의 억울함을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는 '여름 소년' 박태환과 달리 개운치 않은 판정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감한 선수가 있다. '겨울 소녀' 김연아의 이야기다.


금메달을 바라보고 출전한 시합은 아니었다. 10년 넘게 간직해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꿈은 4년 전 이미 달성한 상태였다. 후배들을 위해 선수생활 연장을 결심했고 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꿨다. 선수로서 치르는 마지막 시합의 목표는 아름답게 퇴장하는 것이었다. 실수없이 프로그램을 소화했고 '만족스럽게 마쳤다' 생각했다. 디펜딩챔피언의 클린 경기. 그러나 심판의 판정은 선수의 경기력을 제대로 따라 오지 못했다.


선수의 어머니는 "더 간절한 사람에게 금메달을 줬다고 생각하자"며 딸을 위로했고 김연아는 "내가 인정하고 안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무 미련도 없다. 끝이 나서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선수 측의 입장과 달리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피겨스케이팅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경기 다음날 5대 일간지 1면은 관련 기사로 도배됐다.


국제빙상연맹에 공식 제소, 결과는 기각


경기 직후 국제 비영리 사회운동을 위한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서 진행한 재심사를 요구하는 청원(Demand Rejudgement at the Sochi Olympics)에는 반나절 만에 100만 건이 넘는 서명이 접수됐다. 경기는 끝났지만 심판 판정에 대한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김연아의 팬들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공식 제소를 요구하며 1인 시위와 집회, 신문 광고 게재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지 정확히 한 달째 되던 날,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심판 구성에 대해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며 입장을 밝혔고 지난 4월 11일,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국제빙상연맹에 공식 제소(Complaints)했다"고 발표했다.


체육회의 발표 직후 김연아는 "소치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로서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에 제소한 데 대해 그 결정을 존중하며,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심판으로 참여한, 전 러시아피겨연맹 회장이자 현재 러시아피겨연맹 사무총장인 발렌틴 피세프의 부인 알라 셰코프세바가 경기 판정 직후 러시아 소트니코바 선수와 포옹을 하는 등 중립성을 잃은 모습을 보인 점을 중점으로 제소했다. 그러나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는 지난달 6월 4일 "소트니코바와 심판의 포옹은 자연스러운 매너였다"며 이를 기각했다.


빙상연맹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 않겠다"


기각 판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할 수 있지만 빙상연맹은 상임이사회를 열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체육회도 같은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말로 항소할 수 있는 기한이 마감됐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방법이 남아있지만 지난 18일 < 오마이뉴스 > 와 인터뷰한 박종명 빙상연맹 사무국장은 "제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저희들은 안 합니다. 팬들의 입장 충분히 이해는 해요. 그러나 몇몇 팬들이 김연아 선수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이렇게 하시는데 크게 보셔야죠. 대회도 끝났고 국제빙상연맹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했는데 그 부분이 기각이 됐고. 카스(CAS)에 간다고 해서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느냐, 취약하다고 봅니다."


이어 박 사무국장은 "국제스포츠 회원국들과의 대립 관계나 평창올림픽 개최국가로서의 위상 등을 생각할 때, 또 2002년 김동성 사건, 2004년 양태영 선수 사례를 봐도 카스에 갔지만 안 됐다(금메달을 찾아오지 못했다)"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가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안톤 오노(미국)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실격판정을 받은 김동성과 2004 아테네올림픽 기계체조 개인종합경기에서 편파판정으로 폴햄(미국)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양태영이 각각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지만 기각돼 금메달을 찾지 못했다.


2004년 당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는 "한국 선수단의 항의가 경기 종료 후에 제출됐다"며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기각 판정을 받은 양태영은 "베이징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결의를 다졌지만 김연아에게는 다음 올림픽이 없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시니어 데뷔 이후 거의 매시즌 크고 작은 불리한 판정으로 불이익을 받아왔다. 특히 2007-2008시즌 세계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한 김연아는 경기 당일 고관절부상이 심해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최악의 컨디션에서도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고 123.38점이라는 프리스케이팅 1위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으나 쇼트프로그램과 합한 총점에서는 일명 '줄세우기 점수'로 인해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첫 점프 실패 후 10초 넘게 활주만 했던 아사다마오가 예술점수(PCS) 감점을 받지 않아 우승을 차지해 편파판정 논란이 일었다.


불리한 판정에도 선수의 미래를 위해 팬들은 어떠한 항의도 할 수 없었다. 연맹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두 해가 흘렀고 선수의 마지막 무대, 소치올림픽이 열렸다. 결국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심판 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대한체육회 건물에 위치한 대한빙상경기연맹 사무실. ⓒ 정혜정


선수 보호보다 평창올림픽 개최국 위상이 먼저


지난 3월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당시 김연아의 매니지먼트 올댓스포츠는 "이번 제소가 그동안 수차례 반복된 한국선수들의 판정논란과 불이익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빙상연맹 측은 유독 우리 선수에게 집중되는 부당한 대우를 처단하는 것보다 2018 평창올림픽 개최국으로서의 위상과 국제 스포츠 회원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모양새다. 연맹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지만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빙상을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 드렸습니다"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실망하는 국민은 없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치른 시합에서 부당한 판정을 받았을 때, 선수를 보호해야하는 연맹과 협회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국민이 실망하는 지점은 선수가 아닌 연맹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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